돌봄교실 앞에서 들은 말
“나는 또 남아야 해.” 어제 목요일 하교 뒤, 돌봄교실 앞에서 가방을 멘 민지가 말했어요. 영어학원 차를 기다리던 준호는 곧바로 “나는 영어 하고 태권도도 가”라고 받아쳤고, 두 아이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어요. 처음에는 둘 다 바쁜 일정이 싫다는 뜻으로 들려서 “각자 힘든 게 있지”라고 했어요. 그런데 민지가 입을 다물고 가방 끈만 만지더라고요(복도에...
태그: #교실
“나는 또 남아야 해.” 어제 목요일 하교 뒤, 돌봄교실 앞에서 가방을 멘 민지가 말했어요. 영어학원 차를 기다리던 준호는 곧바로 “나는 영어 하고 태권도도 가”라고 받아쳤고, 두 아이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어요. 처음에는 둘 다 바쁜 일정이 싫다는 뜻으로 들려서 “각자 힘든 게 있지”라고 했어요. 그런데 민지가 입을 다물고 가방 끈만 만지더라고요(복도에...
“이거 누가 먼저 썼어요?” 지난주 목요일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물통 쪽에서 목소리가 커졌어요. 서너 명이 한꺼번에 손을 뻗다가 종이컵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서로 자기 컵은 아니라고 했어요. 저는 일단 컵을 주워 버렸어요. 다음 수업 자료를 꺼내는데도 물을 마신 아이들이 좀처럼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제 앉자”를 두 번 말하고 나니 ...
“내 색종이 망가졌어요.” 월요일 2교시 쉬는 시간, 한 아이가 구겨진 색종이를 들고 울었고, 옆에 있던 아이는 “제가 먼저 민 거 아니에요”라고 곧바로 말했고요. 둘 다 자기 억울함부터 꺼내서 창가 쪽 작은 책상 양끝에 따로 앉혔어요. 처음에는 누가 먼저 그랬는지 묻지 않았어요. 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하고, 울음이 조금 잦아든 아이부터 “내가 본 일을...
지난 3월 첫째 주 월요일 아침, 두 아이의 책상 사이를 교실 끝과 끝만큼 벌려 놓았어요. 둘이 붙어 있으면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한 아이는 창가에, 다른 아이는 복도 쪽에 앉혔지요. 조용한 첫 교시를 기대했는데 둘 다 자꾸 고개를 돌렸어요. 제가 이름을 부르면 얼른 칠판을 봤다가 잠시 뒤 다시 친구 자리를 확인했고요. 준비물을 꺼낼...
수요일 1교시, 받아쓰기 10급을 연습하던 아이가 공책의 빈칸을 오래 바라봤어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열 문장을 쓰게 했더니 두세 글자 뒤부터 연필은 자꾸 멈췄고, 지우개 가루만 늘어났어요. 기다리면 다시 쓰겠지 싶었는데 표정까지 굳는 걸 보고서야 공책을 잠깐 가져왔어요. 보이는 문장을 줄였어요 공책을 반으로 접어 오늘 쓸 세 문장만 보이게 했어요. ...
물을 주고 싶은 마음 “선생님, 이 잎 만져 봐도 돼요?” 화요일 1교시 전, 서준이가 창가의 스킨답서스를 살피더니 다른 아이들도 자기 물통을 들고 모였어요. 어제 방과 후에 놓아둔 작은 화분이었는데, 금세 줄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한 모금씩만 주면 괜찮겠다 싶었어요. 쉬는 시간이 두 번 지나고 보니 누가 얼마나 줬는지 알 수 없었고, 화분받침에는 물이 고...
“또 걸릴 것 같아요.” 지난주 목요일 4교시, 민준이가 운동장에서 줄을 한 번 밟더니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줄넘기 검사를 앞두고 한 명씩 나와 30초 동안 넘은 횟수를 적고 있던 때였어요. 자기 차례가 아닌 아이들도 줄을 손에 돌돌 감은 채 앞만 보고 있었고요. 종이를 먼저 접었어요 민준이 말을 듣고 횟수를 적던 종이를 잠시 접었어요. 줄을 ...
“분명히 여기에 풀을 넣어 뒀는데.” 금요일 2교시 쉬는 시간, 교탁 아래 서랍을 반쯤 빼 놓고 색연필 통과 자를 하나씩 꺼냈어요. 풀은 안 보이고 뚜껑만 두 개 나왔고요 (도대체 짝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서랍 맨 뒤에 납작하게 끼어 있던 작은 봉투 하나가 손끝에 걸렸어요. 봉투 안에는 지난해 우리 반 아이가 접어 준 종이별 편지가 들어 있...
창문부터 열었어요. 8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두 시쯤, 아무도 없는 3학년 교실은 바깥 소리만 크게 들어왔어요. 방학 마지막 금요일이라 2학기 시간표를 붙이고 이름표 몇 장을 다시 뽑으러 잠깐 나온 날이었어요. 교탁 위에는 방학 전에 놓아둔 가위와 풀도 그대로였는데, 제 교실 같지 않았어요. 시간표는 칠판 옆에 대 보았다가 조금 기울어서 다시 뗐어요. ...
“선생님, 준비물이 색종이인가요, 색연필인가요?” 화요일 저녁, 칠판 알림장을 찍어 학급 안내에 올린 지 얼마 안 돼 학부모님 한 분이 물으셨어요. 올릴 때는 제법 잘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확대하니 글자 끝이 흐렸고, 아이들이 그려 둔 작은 그림과 자석에 가린 부분도 있었어요. “확인해서 다시 말씀드릴게요”라고 답한 뒤 같은 내용을 찾느라 저도 잠깐 ...
어제 종례가 끝난 뒤, 교실 바닥에 의자 끄는 소리만 잠깐 남았어요. 아이들이 놓고 간 공책 몇 권을 교탁 위에 가지런히 쌓고 알림장을 적으려는데 칠판 한쪽의 받아쓰기 날짜가 눈에 들어왔고, 아직 금요일 오후인데 다음 주가 갑자기 바로 앞까지 온 것 같았어요. 지우개를 들었어요. 날짜는 그대로 두었어요. 알림장에는 준비물부터 쓰면 되는데 월요일 1교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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