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5 딸 숙제 앞에서 말을 줄여 봤습니다
Idea Status
🌿 Growing (Development Stage)지난 수요일 저녁, 인천 집 식탁에 딸의 사회 공책과 출력해 둔 자료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딸은 자료를 몇 번 넘겨 보면서도 첫 문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이 자료를 먼저 쓰고, 그다음에 이유를 붙이면 되잖아”라며 문장 순서와 표현까지 고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길어지면서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딸은 “아빠, 내가 할 거야” 하고 공책을 덮었습니다. 저도 좋은 뜻으로 알려 주는 것인데 왜 저러나 싶어 잠시 서운했습니다. 딸이 방으로 들어간 뒤 식탁을 치우면서 생각해 보니, 숙제 내용보다 제 말투 때문에 서로 기분이 상한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직원 보고서를 볼 때처럼 빨간 펜부터 들이댄 셈입니다.
도와준다고 옆에 앉았는데, 정작 딸이 생각할 자리를 제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다시 옆에 앉되 먼저 답을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부분만 손가락으로 짚어 달라고 했습니다. 딸이 자료의 한 문단을 가리키기에 “여기서 공책으로 옮기고 싶은 내용이 뭐야”라고만 물었습니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조금 기다리니 한 문장이 나오고, 이어서 두 번째 문장도 적었습니다.
두세 문장을 쓴 뒤에는 틀린 곳부터 찾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쓴 것 중 어느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먼저 물었습니다. 딸은 두 번째 문장을 짚으며 이유를 설명했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띄어쓰기 하나만 같이 고쳤습니다. 숙제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공책이 다시 덮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에도 제가 지킬 것은 먼저 묻고, 두 문장쯤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정도입니다. 너무 단순해서 이게 방법이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식탁 한쪽에는 제가 적어 둔 작은 메모가 남아 있었는데, “말하기 전에 한 번 기다리기”라고 써 놓고 보니 제 숙제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