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옆의 색
지난 목요일 밤, 애월 작업실에서 3기 과제 창을 열다가 최 선생님 그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뻔했어요. 답글 첫 줄에 성까지 썼다가 지웠어요. 커피잔 옆에서 커서만 깜박였고요. 처음엔 제출 순서와 얼굴을 같이 외우면 될 줄 알았어요. 첫 번째 칸, 두 번째 칸, 프로필 사진. 낮에는 제법 맞는데 밤 열한 시가 넘어가면 이름이 슬쩍 자리를 바꿨어요. 과제는 마흔 장 가까이 되고, 닮지 않은 그림도 피곤한 눈에는 묘하게 한 묶음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종이에 이름을 적고, 그 옆에 그림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색이나 선 하나를 붙였어요. 최 선생님은 푸른 그림자. 김 선생님은 짧게 끊기는 연필선. 색을 잘 쓴다거나 선이 좋다는 평가가 아니라, 제가 문을 찾는 표시 같은 거예요.
조금 유치한가 싶었는데 꽤 잘 됐어요.
피드백을 쓰기 전에 그 메모부터 봤어요. “푸른 그림자, 최 선생님.” 속으로 한번 부르고 과제를 열면 지난주 컵 아래 고였던 남색도 따라왔어요. 채팅창에 올라온 짧은 질문도 덜 낯설었고요.
메모는 길게 쓰지 않는 편이 나았어요. ‘따뜻한 색감, 관찰력이 좋음’이라고 쓰면 또 강평이 돼버렸어요. ‘귤 껍질의 주황’, ‘창틀에서 멈춘 선’ 정도. 한눈에 그림이 돌아오는 말이면 됐어요.
이름을 억지로 외우는 것보다 그 사람이 지난주에 남긴 한 장면을 기억하는 쪽이 오래 갔어요. 다만 색은 매주 바뀌어서, 오늘 답글을 달며 최 선생님 이름옆에 새 표시를 하나 더 적었어요. 물컵 테두리의 아주 옅은 회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