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노트

누구나 지식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

#그림

태그: #그림

컬럼/에세이

연필 끝의 자리

수요일 밤, 애월 작업실 모니터에 사과와 흰 접시가 떠 있었어요. 3기 수강생 한 분의 첫 정물 과제였어요. 커피는 이미 식었고, 답글창에는 “잘 그렸어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한참 보다가 그 문장을 지웠어요. 오래 본 선 어색한 선도 있었어요. 그런데 먼저 보인 건 접시 가장자리를 끝까지 따라간 눈이었어요. 사과의 붉은 면보다 접시의 타원이 더 조심스럽게...

한한지우 2026-10-30 분 읽기 37 3 4
컬럼/에세이

서울의 종이 냄새

토요일 오전이었어요. 현관문을 열자 납작한 상자가 발끝에 닿았어요. 서울 출판사 이름이 찍힌 송장을 보고도 한참동안 들지 못했고요. 최근 외주 원고가 또 왔나 싶어 주말까지 모른 척할까, 잠깐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테이프를 길게 뜯으니 봄에 그린 그림이 실린 동화책이 나왔어요. 편집자님의 짧은 메모도 한 장. 견본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서야 어깨가 풀렸어요...

한한지우 2026-10-26 분 읽기 75 2 2
컬럼/에세이

멈춘 화면의 목소리

“설명은 알겠는데,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더 어려워졌어요.” 지난 금요일 밤, 애월 작업실에서 이 선생님의 답장을 다시 읽었어요. 선의 방향과 명암을 길게 적을수록 정확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고칠 순서까지 한꺼번에 흐려진 모양이었어요. 태블릿 화면을 켰어요. 인물 드로잉 위로 제 손이 움직이는 모습을 녹화했어요. 푸른 화면빛만 책상에 남고 식은 커피는 꽤 ...

한한지우 2026-10-12 분 읽기 104 2 2
컬럼/에세이

지우지 않은 선

토요일 점심 무렵, 애월 작업실 책상에서 김 선생님의 인물 드로잉을 열었어요. 3기 피드백 창 옆에는 식은 커피가 있었고, 손은 자꾸 태블릿 펜으로 갔어요. 눈 위치에 비해 턱이 조금 길어 보였거든요. 예전 같으면 새 레이어를 만들었을 거예요. 눈썹과 코끝, 턱 아래에 가로선을 긋고 제가 맞다고 생각한 턱선을 진한 색으로 얹었겠지요. 빠르고 친절해 보이는...

한한지우 2026-09-19 분 읽기 120 2 1
페다고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