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종이 냄새
토요일 오전이었어요. 현관문을 열자 납작한 상자가 발끝에 닿았어요. 서울 출판사 이름이 찍힌 송장을 보고도 한참동안 들지 못했고요. 최근 외주 원고가 또 왔나 싶어 주말까지 모른 척할까, 잠깐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테이프를 길게 뜯으니 봄에 그린 그림이 실린 동화책이 나왔어요. 편집자님의 짧은 메모도 한 장. 견본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서야 어깨가 풀렸어요.
책에서는 잉크와 마른 종이가 섞인 냄새가 났어요. 서울 냄새라고 부르면 조금 우습겠지만요.
창가의 옅은 빛 아래 책을 펼쳐 인쇄된 파란색과 화면 속 파일을 번갈아 봤고요. 화면에서는 맑았던 파랑이 종이 위에서는 조금 더 조용했어요. 봄에는 이 색을 두고 꽤 오래 망설였는데, 무슨 고민을 했는지는 벌써 흐릿해요. 커피는 식었고
보리는 빈 상자에 코를 넣고 모서리마다 냄새를 맡았어요. 책보다 상자가 더 궁금한 얼굴. 저는 책등이 보이게 작업실 선반에 세워 두었어요.
서울에서 제주까지 온 종이는 오는 동안 어떤 냄새를 주워 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