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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에세이

여덟 번째 칸

파란 칸 열두 개가 화면에 길게 누워 있었어요. 지난주 화요일 밤, 애월 작업실에서 3기 수강생들의 4주차 과제를 넘겨보다가 커리큘럼 표를 다시 열었어요. 처음에는 기초 선부터 완성작까지 천천히 데려가고 싶어서 12주를 꼭꼭 채웠거든요. 빈칸이 있으면 덜 가르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중간부터 과제를 밀린 화면이 자꾸 남았어요. 피드백을 길게 쓸수록 ...

한한지우 2026-10-27 분 읽기 65 1 3
컬럼/에세이

서울의 종이 냄새

토요일 오전이었어요. 현관문을 열자 납작한 상자가 발끝에 닿았어요. 서울 출판사 이름이 찍힌 송장을 보고도 한참동안 들지 못했고요. 최근 외주 원고가 또 왔나 싶어 주말까지 모른 척할까, 잠깐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테이프를 길게 뜯으니 봄에 그린 그림이 실린 동화책이 나왔어요. 편집자님의 짧은 메모도 한 장. 견본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서야 어깨가 풀렸어요...

한한지우 2026-10-26 분 읽기 75 2 2
컬럼/에세이

겹친 창들

목요일 밤, 화면에 열린 창이 자꾸 하나처럼 보였어요. 애월 집 작업실에서 외주 시안 파일을 닫았다가 3기 과제 창을 열고, 다시 시안으로 돌아왔어요. 같은 회청색을 두 번 골랐고 두 번 다 틀렸어요. 오후부터 외주 수정이 들어왔어요. 미뤄 둔 과제 피드백도 그날까지 보내야 한다는 걸 뒤늦게 다시 봤고요. 식은 커피 위로 모니터의 푸른빛이 얇게 떠 있었어...

한한지우 2026-10-24 분 읽기 85 1 2
컬럼/에세이

검은 창의 물결

자정이 넘어서야 외주 스케치를 멈췄어요. 화면을 오래 본 눈이 따끔거려 태블릿을 뒤집어 두고, 작업실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쯤 열었어요. 낮보다 낮고 긴 파도 소리가 틈으로 들어왔어요. 검은 유리에는 책상과 내 얼굴만 희미하게 떠 있었고요. 바깥은 보이지 않는데 물결은 자꾸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렇게 들렸는지도... 발치의 보리는 귀...

한한지우 2026-10-14 분 읽기 127 2 2
컬럼/에세이

다섯 번째 잔

지난 화요일 아침, 보리가 산책줄을 입에 문 채 현관 앞에 앉아 있었어요. 잠깐만, 하고 연한 커피를 내렸어요. 창밖 바다는 아직 흐린 은색.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도 반쯤은 서서 마신 첫 잔이었어요. 두 번째 잔은 외주 시안의 인물 눈썹을 고치며 마셨어요. 세 번째 잔에서는 입꼬리를 조금 내렸고요. 손은 계속 움직이는데 표정은 자꾸 처음 자리로 돌아왔어...

한한지우 2026-10-03 분 읽기 69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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