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 더 바빴다
지난주 일요일, 눈을 떴다가 알람부터 껐어요. 나이트 이틀 뒤 휴무라 늦게 자도 되는 날이었거든요. 다시 눈을 감았고, 다음에 휴대폰을 보니 열한 시가 조금 넘었어요. 그때부터 누워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랑 약속한 것도 없고 오후에 갈 데도 없는데 그랬어요. 이불을 걷는 순간 쉬는 날이 아니라 밀린 일을 처리하는 날이 됐어요.
세탁기를 돌려 놓고 거실로 나왔어요. 동생은 소파에서 영상을 보고 있었고 저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어요. 먹을 게 없나 본 게 아니라 뭘 버려야 하나 봤던 것 같아요. 유통기한 지난 소스병 하나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고요.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여서 청소기를 찾다가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어요. 장보기, 답장, 겨울옷 꺼내기, 생필품 주문. 쓰다 보니 욕실 전구도 적어야할 것 같았어요. 전구는 멀쩡했는데 좀 어두워 보였거든요.
장을 보려고 앱을 켰다가 밀린 연락에 답했고, 답장을 하다가 사진첩을 정리했어요. 사진 세 장 지우고 그만뒀어요. 정작 끝낸 건 없는데 두 시가 넘고, 세탁기는 진작 조용해져 있었어요.
병동에서는 다음 일이 눈앞에 와요. 시간이 정해져 있고,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이 대충 보여요. 바쁘다고 투덜대도 손은 움직여요. 집에서는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제가 계속 일을 만들어 냈어요.
솔직히 쉬는 법을 잊었다고 쓰려니 좀 과한 것 같아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기분에 가까웠어요. 휴무를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까지 붙으니 빨래 한 번 돌린 오전이 괜히 실패처럼 보였고요.
오후 늦게 세탁기 문을 열었어요. 축축한 수건을 하나씩 꺼내다가 장바구니에 뭘 담았는지 생각이 안 나서 휴대폰을 다시 봤어요. 냉장고 문도 또 열었어요.
아까도 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