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의 공기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복도에서 지나가는 발소리와 멀리서 웃는 소리가 들어왔고, 의자를 끄는 소리는 그보다 가까이에서 자꾸 겹쳤습니다. 9월 첫째 주 월요일 오전, 첫 교양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기 전이었습니다. 아직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학생들은 휴대폰과 노트를 번갈아 내려다보았고, 나는 출석부를 펼쳐 놓은 채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맨 앞줄 가운데와 창가 뒤쪽에 빈자리가 있었는데, 누군가 조금 늦게 와서 앉을 자리인지 학기 내내 비어 있을 자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얼굴들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학생들도 가끔 나를 보았으나 눈이 마주치면 곧 책상으로 시선을 내렸습니다.
자기소개를 시키는 대신 요즘 자꾸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한 줄로 적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름이나 전공을 말하는 일보다 덜 부담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도 내 쪽의 짐작이었습니다. 종이를 걷어 읽다가 한 문장 앞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버스 창문에 내 얼굴이 계속 겹쳐 보였다.
나는 그 문장을 읽자마자 잘 썼다고 표시할지, 무엇이 좋았는지 설명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버스 바깥 풍경과 창문에 비친 얼굴이 한 화면에 놓인다는 점, ‘계속’이라는 말이 만든 묘한 피로 같은 것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골랐습니다. 아직 과제도 아니었고 점수를 줄 문장도 아니었는데, 학생이 건넨 한 줄을 벌써 첨삭할 문장으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여덟 해 동안 첫 수업을 여러 번 했으면서도 나는 문장을 만나면 너무 빨리 판단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과 평가를 미루는 일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데, 나는 그 차이를 안다고 여기면서도 자주 놓칩니다. 그날도 아마 그랬습니다.
조금 찜찜합니다.
학기가 한참 지난 일요일 오후, 그 학생의 얼굴보다 빈 의자 두 개와 닫히기 전 문틈의 소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첫 과제를 언제 냈는지는 출석부와 제출 기록에 남지만, 서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교실의 공기는 어디에도 적히지 않습니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해 곧 설명을 시작했고, 학생들은 펜을 들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다면 다른 것이 보였을까, 아니면 침묵만 길어졌을까 싶기도 합니다. 처음 만난 교실에서는 무엇이 가장 오래 남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