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한 토요일
지난 토요일 오후, 거실 시계만 자꾸 봤어요. 소파에 앉은 건 점심 전이었고, 잠깐 쉬려던 참이었어요.
아침에는 평소처럼 하천을 뛰어 5km를 채우고 돌아와 바로 샤워했어요. 수건까지 널 때는 하루가 길 줄 알았어요.

수행평가 기록을 정리해야 했고 다음 주 수업 자료도 봐야 했는데, 노트북은 충전선만 꽂힌 채 식탁 위에 그대로 있었어요.
휴대폰을 몇 번 뒤집어 봤어요.
화면을 켰다가 별것 없이 다시 엎었고, 수학 영상도 하나 틀지 않았어요. 소파 쿠션의 실밥이 튀어나온 것만 오래 봤네요. 잘라야지 생각만 했어요.
아내와 늦은 점심을 먹었어요.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냈고, 말도 별로 안 했어요. 설거지는 제가 했는데, 그게 그날 한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다시 소파에 앉으니 창밖이 조금씩 어두워졌고, 아직 오후인데 저녁 같기도 했어요. 거실 불을 켤까 말까 한참 미뤘고요. 근데 이게 이상하게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저녁이 되어서야 하루를 너무 비웠나 싶었어요. 기록은 그대로였고 수업안도 펼치지 않아서 월요일의 제가 좀 곤란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래도 몸을 일으키진 않았네요.
피곤한 날은 빈 칸으로 남아도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 핑계 같기도 해요. 소파 팔걸이에는 아침에 벗어 둔 러닝 양말이 그대로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