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시간
이번 주 수요일 오전, 학생들은 두 사람씩 마주 앉아 서로의 첫 문단을 낮은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수업 시작 십여 분을 비워 두고, 화면에 올린 과제가 아니라 미리 출력해 온 종이를 펴게 했습니다. 과제를 받자마자 첨삭을 시작하면 문장이 모니터 안에서는 지나치게 매끈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조사도 맞고 문장부호도 제자리에 있는데,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문장입니다. 저도 그 매끈함에 속아 밑줄을 긋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있어서, 먼저 귀로 확인해 보기로 했지요.
처음에는 다들 민망한지 평소보다 빠르게 읽었습니다. 옆자리까지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를 낮추고, 문단 끝에 닿자마자 종이를 뒤집는 학생도 있었고요. 한 학생은 아래 문장을 읽다가 중간에서 두 번 멈췄습니다.

디지털 환경의 확산으로 변화한 의사소통 방식은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문제를 경험하게 합니다.
눈으로 볼 때에는 그럴듯했지만 소리 내자 숨이 모자랐고, 끝에 가서는 무엇이 문제를 경험한다는 것인지 주어도 흐려졌습니다. AI로 다듬은 문장은 모두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너무 익숙한 징후만 찾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학생은 한참을 멈춘 뒤 주어가 이상하네요, 하고 연필로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제가 설명하기 전에 자기 문장의 어긋난 자리를 먼저 본 셈.
혼자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려운 학생에게는 짝이 대신 읽도록 했습니다. 듣는 학생은 문법을 고치거나 더 나은 표현을 제안하지 않고, 어색했던 곳 한 군데에만 표시하게 했습니다. 이번에 정한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 첫 문단만 종이로 출력하고 줄 사이를 넉넉히 둡니다.
- 읽다가 숨이 끊기거나 뜻을 놓친 자리에서 멈춥니다.
- 듣는 사람은 한 군데만 연필로 표시하고 이유는 길게 말하지 않습니다.
표시를 하나로 제한한 것은 의외로 필요하더라고요. 고칠 곳을 많이 찾으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금세 채점자가 되고, 읽는 사람은 자기 문장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한 군데만 남기게 하니 왜 하필 여기였는지를 종이를 사이에 두고 다시 읽었습니다. 맞춤법과 문법을 늘어놓던 시간보다 조용했고, 제가 돌아다니며 끼어들 일도 적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한 학생이 연필 표시가 남은 종이를 들고 왔습니다. 첫 문장을 통째로 지운 다음, 자신이 겪은 단체 대화방의 장면으로 다시 시작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지운 자리가 얇아질 만큼 문질러져 있었습니다. 그 뒤로 초고를 낸 학생에게는 모니터를 닫고 종이 앞에서 한 번 읽어 보라고 조용히 권합니다. 수요일 그 종이도 접지 않은 채 가방에 넣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