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노트

누구나 지식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

컬럼/에세이

여섯 시간 뒤에

최
최우진
2026-09-27 15:44 98

지난 토요일 오전,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12시간 계획표를 폈다. 두 시쯤에는 한국사 기출 한 페이지를 세 번 읽고 있었다. 읽고 또 읽엇는데 남는 건 없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잡아 둔 날은 이상하게 저녁 공부보다 하루를 망쳤다는 기분이 먼저 왔다. 아직 시간은 많은데 이미 끝난 것 같고.

휴게실에서 김밥을 먹고 잠깐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서 뒤의 여섯 시간은 아예 다른 날이라고 쳐 보기로 했다. 타이머도 12시간 하나 대신 6시간짜리 두 개로 맞췄다.

첫 타이머가 밀린 건 그냥 뒀다. 두 번째에는 교육학 모의고사부터 다시 폈다. 긴 계획표에 줄 긋는 것보다 덜 억울했다. 쉬는 시간이 길어질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자리로 돌아갈 핑계가 생겼다. 새로 시작한 날을 휴게실에서 보내긴 좀 그래서.

두 번째 여섯 시간을 다 채우진 못했다. 타이머에는 네 시간 조금 넘게 남았다.

최우진

페다고노트 작가

구독자 0 게시글 15
최우진

댓글 3개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이
이서연 2026-09-27 19:09

뒤의 여섯 시간을 다른 날로 친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수업 하나가 꼬이면 다음 교시 종을 새 출발처럼 여긴 적이 많습니다.

김
김민준 2026-09-27 19:41

저도 수업 준비할 때 오전 계획이 밀리면 점심 이후 할 일만 새로 적어 본 적 있습니다. 긴 계획표에 줄 긋는 것보다 다시 앉기가 낫더라고요.

최
최우진 2026-09-27 21:10

오후 할 일만 다시 적는 게 줄 긋는 것보다 자리에 붙어 있기 좋더라고요.

다른 게시물

낭독의 시간

낭독의 시간

이번 주 수요일 오전, 학생들은 두 사람씩 마주 앉아 서로의 첫 문단을 낮은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수업 시작 십여 분을 비워 두고, 화면에 올린 과제가 아니라 미리 출력해 온 종이를 펴게 했습니다. 과제를 받자마자 첨삭을 시작하면 문장이 모니터 안에서는 지나치게 매끈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조사도 맞고 문장부호도 제자리에 있는데,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오래 ...

by 정수빈

오답 옆에 한 줄을 남겼어요

지난주 금요일 6교시, 담임반 교탁 위에 짧은 확인 문제를 펼쳐 뒀고, 채점을 마치고 보니 같은 식에서 빨간 표시가 여러 번 겹쳤어요. 조금 답답했어요. 평소처럼 오답 노트를 내라고 하면 풀이를 통째로 옮기는 아이가 많아요. 정답은 반듯하게 남는데, 어디서 막혔는지는 잘 안 보였어요. 베껴 쓰는 손만 바빠 보일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날은 오답 아래...

by 김민준

빈 책상 위의 선

빈 책상 위의 선

“태블릿 펜은 어떤 걸 써야 하나요?” 지난 기수 첫 수업이던 토요일 오후, 애월 집 작업실 채팅창에 박 선생님의 질문이 올라왔어요. 종이 한 장 예전 같으면 펜촉 차이와 앱, 종이 종류를 먼저 설명했을 거예요. 실제로 그랬고요. 화면에는 구매 링크를 묻는 채팅이 오래 남았어요. 도구가 없는 분은 시작도 못 한 듯 조용해졌고, 좋은 펜을 준비한 분도...

by 한지우

한 번씩으로는 안 됐다

지난주 금요일 이브닝, 준비실 카트 위에 수액 세트와 알코올 솜을 놓고 세 번째 신규에게 교체 순서를 보여줬어요. 제가 먼저 한 번, 신규가 바로 한 번. 순서는 맞았고 저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예전에는 거기까지 하면 됐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보여주고, 한 번 해보고, 옆에서 한 번 더 지켜보면 확인 끝. 체크리스트에도 수행이라고 표시하기 좋았거...

by 강하은

질문이 없는 온보딩

질문이 없는 온보딩

지난주 목요일 오후, 판교 사무실 작은 회의실에서 J님과 API 권한 코드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질문이 끊겼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J님은 알겠다고 했고 화면은 그대로였습니다. 이해했는지 물으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어디를 봐야 하는지는 바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이 없다고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질문을 만들...

by 박지훈

계양산에서 공단 쪽을 내려다보며

물병 뚜껑을 닫고 정상 벤치 옆에 서서 한참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어제 일요일 오전, 계양산 아래로 펼쳐진 풍경에서 남동공단 쪽을 찾아보는데 제가 방향을 제대로 짚은 것인지는 조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낮은 지붕과 길이 붙어 있어 생각보다 조용하고 작게 보였습니다. 평일에는 납기 전화 한 통, 수정 견적서 한 장에도 공장들이 아주 크게 느껴집니다. 그 안...

by 윤도현

페다고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