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장 사진을 지운 아침
“선생님, 준비물이 색종이인가요, 색연필인가요?” 화요일 저녁, 칠판 알림장을 찍어 학급 안내에 올린 지 얼마 안 돼 학부모님 한 분이 물으셨어요. 올릴 때는 제법 잘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확대하니 글자 끝이 흐렸고, 아이들이 그려 둔 작은 그림과 자석에 가린 부분도 있었어요. “확인해서 다시 말씀드릴게요”라고 답한 뒤 같은 내용을 찾느라 저도 잠깐 멈칫했어요.
제가 올린 사진을 제가 해독하고 있으니 조금 민망하더라고요.
수요일에는 평소보다 일찍 교실에 가서 A4 용지를 반으로 잘랐어요. 꼭 필요한 내용만 검은 펜으로 다시 쓰고, 칠판 사진은 지운 뒤 종이만 가까이 찍어 올렸어요. 또 사진이잖아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제 글씨도 썩 반듯하지 않고요), 교실 전체를 찍은 것과 안내만 찍은 것은 꽤 달랐어요. 제목을 네모 칸 안에 넣다가 한쪽이 조금 기울었는데, 이런 건 꼭 힘주어 쓰면 더 삐뚤어져요.
그날은 내용을 세 덩어리로 나눴어요.
- 준비물은 물건 이름과 수량을 한 줄에
- 제출할 것은 가져오는 날과 함께
- 시간은 “아침까지”, “3교시”처럼 따로
한 문장에 모두 넣지 않고 줄을 바꿨더니 저도 확인하기가 빨랐어요. 특히 ‘풀, 색종이 10장, 금요일 아침까지’처럼 물건과 시간이 붙어 있으면 어디까지가 준비물인지 다시 읽게 되는데, 칸을 나누니 그런 일이 없었어요. 학부모님께서는 새 안내를 보시고 “네, 색종이 확인했습니다”라고 짧게 답해 주셨어요. 그 한 줄을 보고 괜히 일이 아주 잘 풀린 것처럼 조금 들떴고요.
칠판 사진에는 교실 분위기가 남아요. 날짜 자석이나 아이들이 구석에 그린 얼굴, 지우다 남은 분필 자국까지 보여서 저도 그런 사진을 좋아해요. 다만 집에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내용은 장면보다 글이 먼저 보여야 하나 봐요. 사진 한 장이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받는 쪽에서는 확대하고 가려진 글자를 짐작해야 했어요.
늘 손글씨로 다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바쁜 아침에는 입력창에 짧게 적는 편이 나을 수도 있고요. 수요일에 쓴 반쪽짜리 종이는 아직 교탁 서랍 맨 위에 들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