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한 장 넘기지 못했다
Idea Status
🌿 Growing (Development Stage)창문부터 열었어요. 8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두 시쯤, 아무도 없는 3학년 교실은 바깥 소리만 크게 들어왔어요. 방학 마지막 금요일이라 2학기 시간표를 붙이고 이름표 몇 장을 다시 뽑으러 잠깐 나온 날이었어요. 교탁 위에는 방학 전에 놓아둔 가위와 풀도 그대로였는데, 제 교실 같지 않았어요.
시간표는 칠판 옆에 대 보았다가 조금 기울어서 다시 뗐어요. 코팅지 끝이 자꾸 말려 올라갔고요. 책상에 앉으니 탁상달력은 7월 장이 뒤로 덜 넘어간 채 8월에서 멈춰 있었어요. 빨간 펜으로 적어 둔 방학식, 연수, 도서관 반납일 같은 글씨가 유난히 진했어요.
9월 장을 잡았는데 손이 멈췄어요.
넘기면 되는 건데, 그 얇은 종이 한 장이 그날은 다음 주 전체처럼 느껴졌어요. 조금 우습기도 했어요(달력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복도에서 김 선생이 문 사이로 얼굴을 보이고 “다음 주에 봐요” 하고 지나갔어요. 그 말이 개학보다 먼저 교실에 들어온 것 같았어요.
새 공책 묶음의 비닐을 뜯으니 종이 냄새가 났고, 책상은 새 자리대로 줄을 맞춰 두었어요. 그런데 그날 방학의 끝은 그런 새것들보다 비어 있는 교실의 조용함에 더 가까웠어요. 아이들이 없으면 교실은 넓어 보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작고 납작해 보였어요. 제가 피곤해서 그렇게 본 건지도 모르겠어요.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그때 멈춘 손이 가끔 생각나요. 막상 2학기는 시작됐고 시간표 모서리는 벌써 한 번 떨어졌어요. 달력도 지금은 9월을 펴 놓았는데, 그날의 8월은 아직 책상 위에 남아 있는 것 같고요. 이런 문장은 좀 지나친가 싶지만요.
이름표를 한 장씩 올려놓다가 두 장의 자리를 바꿨어요. 이유는 별로 없었어요. 달력은 8월에 둔 채 가방을 챙겼고, 창문을 닫은 뒤에도 커튼 끝이 잠깐 흔들렸어요. 9월 장은 뒤쪽에서 모서리만 조금 나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