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에게 먼저 맡겨야 할 일
지난주 화요일 오전, 남동공단 회사 회의실에서 박 사원 앞에 거래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놓았습니다. 입사 석 달째인 박 사원이 견적 납기를 묻는 전화를 직접 걸었고, 저는 옆자리에서 듣기만 했습니다. 첫 인사가 조금 빨랐고 제품 번호를 확인할 때는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통화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제가 먼저 답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신입이 들어오면 제품 번호와 견적서 양식부터 외우게 했습니다. 시험 보듯 물어보면 곧잘 대답했는데, 막상 거래처 담당자가 순서를 바꾸어 질문하면 말문이 막히곤 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옆에서 답을 알려 주거나 전화를 넘겨받았습니다. 업무는 빨라졌지만 다음 전화에서도 후배는 수화기보다 제 얼굴을 먼저 보았습니다.
저도 급한 마음에 그랬습니다. 영업은 답이 늦으면 일이 꼬인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으니, 기다리는 몇 초가 꽤 길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허허, 제가 답을 다 해 놓고 왜 혼자 못 하느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작은 문의부터 통째로 맡깁니다
요즘은 틀려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문의 하나를 골라 먼저 통화하게 합니다. 재고 확인이나 견적서 수신 여부처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전화를 끊은 뒤에는 잘했는지부터 따지지 않고, 상대가 무엇을 물었는지 메모지에 함께 적습니다. 답하지 못한 항목과 다시 확인할 사람도 옆에 표시합니다.
박 사원은 통화를 마친 뒤 납품 시간을 정확히 되묻지 못했다고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본인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설명을 여러 번 들려주는 것보다 전화 한 통을 맡기는 편이 오래 남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박 사원 메모지의 ‘납품 시간’ 옆에는 아직 빈 동그라미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