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이 끓는 동안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라면 두 개 먹자.” 지난주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인천 집에 들어오니 중2 아들이 주방 문 앞에서 말했습니다. 아내와 딸은 먼저 잠든 뒤였고, 저도 저녁을 건너뛴 터라 냄비부터 꺼냈습니다. 밤늦게 두 개는 많지 않으냐는 말은 물을 받은 다음에야 떠올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공부는 했느냐, 게임은 얼마나 했느냐부터 물었을 겁니다. 그날은 아들이 스프를 먼저 넣어야 맛있다고 했고, 저는 물이 끓은 뒤가 맞다며 잠깐 실랑이를 했습니다. 근거는 둘 다 없었습니다. 허허.
물이 끓기 시작할 무렵 아들이 시험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고 툭 말했습니다. 저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느니 미리 했어야 한다느니 답을 보태려다가, 포장지 옆에 놓인 젓가락만 만졌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도움이 되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서 그랬습니다.
라면은 조금 퍼졌고, 우리는 식탁에서 말없이 냄비를 비웠습니다. 아들은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은 국물을 버리며 시험 범위보다 그 짧은 한마디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라면 물이 끓는 몇 분은 집에서 어떤 시간이 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