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노트

누구나 지식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

아이디어 노트

틀린 답을 기다리기

최
최우진
2026-10-02 09:35 119

아이디어 상태

🌿 성장 중 (구체화 단계)
진행률 30%

어젯밤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교육학 오답 한 개를 펴 놓고 한참 멈췄다. 또 해설 버튼부터 누르려다가 손을 뗐다.

5월 교생실습 때 정 선생님 수업이 갑자기 생각났다. 학생이 답을 못하면 교실이 조용해지는데, 선생님은 바로 대신 말하지 않았다. 먼저 풀이를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옆에서 본 그 몇 초가 진짜 길었다.

나는 그 시간을 못 버티는 편이다. 틀렸다는 표시를 보면 빨리 정답으로 덮고 싶어서 해설부터 켰고, 읽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은데 비슷한 선지가 나오면 또 틀렸다. 공부를 한 건지 정답 구경을 한 건지 좀 애매했다.

그래서 어제는 해설을 덮고 왜 3번을 골랐는지 노트에 두 줄만 적었다. 쓰고 보니 근거는 없고 선지의 ‘자율’이라는 단어 하나에 끌려가 있었다. 개념을 몰랐다기보다 익숙한 말에 급하게 손을 든 셈이었다.

오답도 학생처럼 먼저 말하게 두면 어떨까. 답을 다시 맞히는 것보다 내가 고른 이유, 버린 이유를 짧게 적고 그다음 해설을 보는 식으로. 모든 문제에 하면 시간 다 갈 것 같아서 애매한 것만 해볼 생각이다. 이게 며칠이나 갈진 몰라.

다음 한 문제는 좀 기다려봐야겠다.

첨부 이미지 (1개)

최우진

페다고노트 작가

구독자 0 게시글 15
최우진

댓글 1개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강
강하은 2026-10-02 11:30

저도 신규가 답할 몇 초를 못 버티고 먼저 말해요.

다른 게시물

남은 오후

몇 해 전 가을 수요일 오후, 마지막 분반의 학생들이 거의 빠져나간 강의실에는 의자를 미는 소리만 잠깐씩 남아 있었습니다. 칠판 한쪽에는 수업 중 고쳐 쓴 문장이 지워지지 않은 채 있었고, 닫히지 않은 창문으로 들어온 공기가 출석부의 얇은 종이를 들썩였습니다. 다음 수업이 없는 오후였습니다. 서둘러 강의실을 비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복도와 책상...

by 정수빈

라면 물이 끓는 동안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라면 두 개 먹자.” 지난주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인천 집에 들어오니 중2 아들이 주방 문 앞에서 말했습니다. 아내와 딸은 먼저 잠든 뒤였고, 저도 저녁을 건너뛴 터라 냄비부터 꺼냈습니다. 밤늦게 두 개는 많지 않으냐는 말은 물을 받은 다음에야 떠올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공부는 했느냐, 게임은 얼마나 했느냐부터 물었을 겁니다. 그날은 아들이...

by 윤도현

보온통의 김

뚜껑을 돌리니까 김이 아주 조금 올라왔다. 목요일 점심, 학교 근처 독서실 휴게실이었다. 아침에 현관에서 엄마가 보온통을 건넸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끼운 채 그냥 가방에 넣고 나왔다. 뭐 들었는지도 안 물어봤다. 점심때가 돼서야 생각났다. 전자레인지 앞 테이블에 통을 꺼냈다. 계란말이랑 멸치볶음이 칸마다 눌려 있었고, 밥은 뚜껑 가까이까지 차 있었다....

by 최우진

서랍 맨 뒤에서 나온 종이별

“분명히 여기에 풀을 넣어 뒀는데.” 금요일 2교시 쉬는 시간, 교탁 아래 서랍을 반쯤 빼 놓고 색연필 통과 자를 하나씩 꺼냈어요. 풀은 안 보이고 뚜껑만 두 개 나왔고요 (도대체 짝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서랍 맨 뒤에 납작하게 끼어 있던 작은 봉투 하나가 손끝에 걸렸어요. 봉투 안에는 지난해 우리 반 아이가 접어 준 종이별 편지가 들어 있...

by 이서연

다섯 번째 잔

지난 화요일 아침, 보리가 산책줄을 입에 문 채 현관 앞에 앉아 있었어요. 잠깐만, 하고 연한 커피를 내렸어요. 창밖 바다는 아직 흐린 은색.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도 반쯤은 서서 마신 첫 잔이었어요. 두 번째 잔은 외주 시안의 인물 눈썹을 고치며 마셨어요. 세 번째 잔에서는 입꼬리를 조금 내렸고요. 손은 계속 움직이는데 표정은 자꾸 처음 자리로 돌아왔어...

by 한지우

줄넘기 줄을 잠깐 내려놓게 한 날

줄넘기 줄을 잠깐 내려놓게 한 날

“또 걸릴 것 같아요.” 지난주 목요일 4교시, 민준이가 운동장에서 줄을 한 번 밟더니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줄넘기 검사를 앞두고 한 명씩 나와 30초 동안 넘은 횟수를 적고 있던 때였어요. 자기 차례가 아닌 아이들도 줄을 손에 돌돌 감은 채 앞만 보고 있었고요. 종이를 먼저 접었어요 민준이 말을 듣고 횟수를 적던 종이를 잠시 접었어요. 줄을 ...

by 이서연

페다고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