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잔
지난 화요일 아침, 보리가 산책줄을 입에 문 채 현관 앞에 앉아 있었어요. 잠깐만, 하고 연한 커피를 내렸어요. 창밖 바다는 아직 흐린 은색.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도 반쯤은 서서 마신 첫 잔이었어요.
두 번째 잔은 외주 시안의 인물 눈썹을 고치며 마셨어요. 세 번째 잔에서는 입꼬리를 조금 내렸고요. 손은 계속 움직이는데 표정은 자꾸 처음 자리로 돌아왔어요. 고치기 전이 나았나. 그런 생각도 몇 번.
저녁에는 윤 선생님의 과제 질문을 읽었어요. 선이 자꾸 굳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어요. 답을 쓰다가 네 번째 커피를 만들었어요.
손목보다 어깨를 먼저 풀어 보세요. 종이를 보지 말고 허공에 크게 그어도 좋아요. 그렇게 적고 나니 낮에 붙잡고 있던 얼굴이 다시 보였어요. 내가 설명한 말을 내가 못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조금 우스웠어요.
가르치는 일이 그림을 밀어내는지, 다시 데려오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둘 다인 날도 있는 것 같고…
밤 책상 위의 다섯 번째 잔은 거의 식어 있었어요. 보리는 의자 아래에서 한 번 뒤척였고, 노란 스탠드 빛 안에 컵 테두리 자국만 겹쳐졌어요. 그날은 그린 선보다 커피 자국이 더 많이 남았어요.
다섯 번째 잔은 어디까지 커피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