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 바닥의 파랑
화요일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야 붓 몇 자루를 싱크대로 가져갔어요. 어젯밤 마지막 답글을 쓰고 그대로 물통에 꽂아 둔 것들. 붓대에는 마른 물감이 얇게 붙어 있었어요. 물을 두 번 갈았어요. 헹굴 때마다 바닥에 가라앉은 파랑이 조금씩 옅어졌어요. 창으로 들어온 빛도 물 위에서 잘게 흔들렸고요. 물통 가장자리에 남은 가느다란 파란 테두리.
수강생에게는 늘 붓을 바로 씻어 두라고 말해요. 굳으면 붓끝이 상한다고, 다음 색이 탁해진다고요. 정작 제 붓은 밤을 넘겼네요. 조금 우스웠어요.
커피 물이 끓었다는 소리가 났는데도 한참 그대로 서 있었어요. 맑아지는 물보다 바닥의 파랑을 더 오래 봤어요. 피곤하면 별것에 시간을 쓰게 되는 건지
깨끗해진 붓끝을 손가락으로 모으다가 어젯밤 피드백에서 지운 문장이 생각났어요. “이 선은 망설인 것처럼 보여요.” 너무 단정적인 말 같아서 지웠어요. 그런데 지운 쪽이 더 정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감도 말도 오래 담가 두면 처음과 다른 색이 될까요.
어젯밤 지운 문장은 아침에 다시 써도 같은 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