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태블릿
화요일 점심 무렵, 김 선생님의 과제 아래에 답글을 길게 썼어요. 선이 자꾸 끊기는 이유와 손목 각도, 다시 그릴 때 먼저 볼 곳까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니 손은 꽤 바빴는데 제 그림은 한 줄도 없었어요. 조금 웃겼어요.
창가의 태블릿은 검은 화면 그대로였어요. 보리는 그 앞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잠들어 있었고요. 커튼 틈의 희끗한 빛이 등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어요. 집은 너무 조용해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렸고

산책이나 가자 싶어 가방을 챙겼어요. 스케치북은 두고 배변봉투와 얇은 겉옷만 넣었어요. 그게 이상하게 조금 들떴어요. 뭘 그리지 않아도 되는 외출이라니. 보리는 현관에서 벌써 발을 바꾸며 서 있었고, 저는 신발끈을 두 번이나 다시 묶었어요.
돌아와서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어요. 찾는 것도 없으면서요. 창밖의 옅은 바다빛을 잠깐 보고 커피를 반 잔 마신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았어요. 켤까, 생각은 했는데 손이 가지 않았어요.
태블릿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책상 가장자리에서는 연필 한 자루가 조금씩 굴러가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