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창의 물결
자정이 넘어서야 외주 스케치를 멈췄어요. 화면을 오래 본 눈이 따끔거려 태블릿을 뒤집어 두고, 작업실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쯤 열었어요.
낮보다 낮고 긴 파도 소리가 틈으로 들어왔어요. 검은 유리에는 책상과 내 얼굴만 희미하게 떠 있었고요. 바깥은 보이지 않는데 물결은 자꾸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렇게 들렸는지도...
발치의 보리는 귀를 한 번 움직이고 다시 잠들었어요. 바람이 책상 위 종이 끝을 살짝 들었다 놓았어요. 사각거리는 흰 모서리. 한참 들은 것 같지만 아마 몇 분이었을 거예요.
창을 닫으니 방이 다시 방이 됐어요.
밤의 물결은 검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