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침묵
어제 월요일 오후, 한 학생의 초안을 강의실 화면에 띄우자 교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좋았던 문장부터 말해 보자고 넓게 물었지만 학생들은 화면과 공책을 번갈아 볼 뿐이었고, 발표자는 의자 안쪽으로 조금씩 몸을 접으며 제 얼굴을 살폈습니다. 기다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손은 자꾸 키보드 쪽으로 갔습니다. 첫 문단의 장면은 잘 보이는데 둘째 문단에서 설명이 길어진다든지, 이 표현은 앞의 문장과 겹친다든지, 제가 먼저 말하면 금방 끝낼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그 침묵을 오래 견디지 못했습니다. 학생이 난처해하는 시간을 줄여 주는 일이라고 여기며 제가 먼저 한두 문장을 짚었고, 그다음에는 질문을 바꾸어 다시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제 말이 기준이 된 뒤였습니다. 학생들은 제가 표시한 부분을 확인하거나 고개를 끄덕였고, 합평은 어느새 강사의 첨삭을 함께 구경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업은 매끄럽게 흘렀지만 학생들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짧아졌고, 합평도 짧아졌습니다.

어제는 화면을 껐습니다. 초안을 각자 다시 읽으며 잘 쓴 곳이나 고칠 곳을 찾지 말고, 읽다가 눈이 머문 곳 한 군데에만 표시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유를 완성된 문장으로 쓰지 않아도 되고 동그라미 하나면 된다고 덧붙인 뒤, 옆자리 학생과 2분 동안 그곳을 서로 보여 주게 했습니다. 교실 전체를 향해 말할 때는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부터 걱정하지만, 두 사람이 종이를 가운데 놓고 말하면 읽다가 멈춘 사실만으로도 대화가 시작됩니다. 물론 늘 되는 방식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떤 반에서는 2분이 지나도록 과제 제출 이야기만 할 수도 있고, 표시한 곳이 띄어쓰기 하나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서는 내가 장면을 본 것 같았어요.
한 학생이 옆자리에서 나눈 말을 다시 들려주자, 그 뒤로는 표현이 세련되었는지를 판정하는 말보다 독자가 어디에서 천천히 읽었고 어디에서 앞 문장으로 돌아갔는지를 말하는 문장이 조금씩 이어졌습니다. 발표자도 처음보다 고개를 들었습니다. 합평 전에 질문을 잘 준비하는 일만 생각했는데, 질문이 넓을수록 대답할 자리는 오히려 좁아질 때가 있었습니다. 좋은 점을 말하라는 부탁도 학생에게는 글 전체를 평가하라는 요구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여러 학기를 지나고서도 자주 잊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빈 의자 사이를 지나며 화면을 다시 켰다가 껐습니다. 합평의 침묵을 없애기보다, 그 안에 종이 한 장과 옆자리 한 사람, 2분쯤의 작은 자리를 마련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침묵에는 무엇을 가운데 놓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