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 시 이후
월요일 밤 9시 15분, 딸이 잠든 방 문을 손잡이까지 잡고 닫았습니다. 거실에는 블록 네 개가 떨어져 있었고 식탁에는 반쯤 남은 물컵이 있었습니다. 노트북부터 열 생각이었는데, 발로 블록을 밟을 것 같아 먼저 주웠습니다. 물컵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미뤄 둔 개인 메모를 열었습니다. 제목을 적으려는데 소파 옆에 어린이집 가방이 보였습니다. 월요일 저녁인데 안내장을 아직 안 꺼냈습니다. 읽어 보니 다음 날 준비물이 작은 지퍼백과 여벌 양말이었습니다. 지퍼백은 금방 찾았고, 양말은 건조대에 있었습니다. 작은 양말 한 짝을 찾느라 빨래 사이를 뒤지는 시간이 묘하게 깁니다.
다시 앉아 잠깐 코드를 봤습니다. 정확히는 저장소를 열고 지난 커밋 몇 개를 읽었습니다. 뭘 고치려 했는지는 기억나는데, 굳이 지금 해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때 방에서 물 달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컵을 들고 다녀오니 아내가 내일 아침에는 누가 먼저 씻을지 물었습니다. 등원 준비와 출근 시간을 두어 문장으로 맞췄습니다.
그 뒤로 메일 하나를 지우고, 충전기를 꽂고, 메모 창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에 생긴 시간은 제 시간 같으면서도 자꾸 다른 일의 가장자리로 붙습니다. 두시간이면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뭔가를 시작할 자세만 여러 번 잡았습니다. 이걸 하려고 연 건 아니었는데 싶었습니다.
11시가 넘어 노트북을 닫았습니다. 메모에는 제목 한 줄만 남아 있었습니다. 거실 시계는 생각보다 멀리 가 있었습니다.
밤 아홉 시 이후는 좀 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