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의 말
월요일 저녁, 국 냄비의 불을 줄이고 멸치볶음 접시를 식탁 가운데 놓는데 아들이 숟가락을 든 채 물었습니다.
“엄마는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
수업하고 과제를 읽었다고, 별일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은 더 묻지 않고 국에 밥을 조금 말았습니다. 평소에는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괜찮았다는 말이나 고개 한 번으로 끝내는 아이인데, 모처럼 먼저 건넨 질문에 나는 왜 그렇게 짧게 답했을까요. 피곤해서였다고 하기에는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은 때였고, 싱크대에는 냄비 하나와 도마밖에 없었습니다.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서론을 세 번이나 고쳐 왔고, 오후에는 제출된 글의 파일 이름을 하나씩 바꾸어 저장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아들이 궁금해할 리 없다고 내가 먼저 정했는지도 모릅니다.
국자를 내려놓고 물컵을 채우는 동안, 예전에는 식탁에서 아들의 말이 길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급식에 나온 생선의 가시가 많았다거나, 쉬는 시간에 친구가 지우개를 창밖으로 떨어뜨렸다거나, 체육관 바닥에 줄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이 앞뒤 없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밥이 식는다고 재촉하면서도 대강 웃고 들었는데, 이제는 그때의 순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언제부터 먼저 말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어느 무렵이었을까요, 방문을 닫는 소리가 달라진 때와 겹쳤을까요, 이런 식으로 시기를 찾아보는 일도 조금 우습습니다. 사람의 말수가 달력처럼 한 장씩 줄어드는 것은 아닐 테니.
수업에서는 짧은 문장 하나를 오래 들여다봅니다. 왜 여기서 멈췄는지, 이 접속어 뒤에 쓰려다 지운 말은 무엇인지, 단정하는 문장 아래에 망설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짐작하며 여백에 연필을 댑니다. 한 문장을 덧붙여 보라고 썼다가 지우고, 이 정도면 이미 할 말을 한 셈인가 싶어 다시 읽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들의 짧은 대답 앞에서는 금세 다음 질문을 꺼냅니다. 누구와 먹었는지, 수업은 어땠는지, 수행평가는 언제인지. 기다리는 척하면서 답의 모양을 정해 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나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아들은 빈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이 닫힌 식탁 위에는 물이 반쯤 남은 컵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컵을 바로 치우지 않고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말이 없다는 것이 꼭 아무 말도 없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조금 더 들었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