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문장
“무엇을 남겨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주 목요일 오후, 대전의 대학 강의실에서 600자 서평의 첫 문장을 고쳐 보게 했을 때 한 학생이 지운 문장 옆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습니다. 원고에는 책의 줄거리와 저자의 주장, 읽으며 떠올린 경험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고, 학생은 그중 어느 하나도 함부로 빼지 못했습니다. 이미 길게 쓴 초안을 줄이는 학생들은 연필을 움직이기라도 했지만, 처음부터 600자로 쓰라는 조건을 받은 학생들은 빈 화면 앞에서 더 오래 멈췄습니다. 짧게 쓰라고 하면 곧장 짧아질 줄 알았던 제 설명부터 너무 간단했던 셈입니다.
저는 그동안 빠진 내용이 없는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책의 주장이 없으면 보태고, 근거가 흐리면 사례를 넣으라고 했으며, 자기 생각이 두 문장뿐이면 조금 더 풀어 쓰라고 표시했습니다. 그 말을 충실히 따른 글은 자주 부풀었습니다. 문장은 틀리지 않았고 필요한 항목도 갖추었는데,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왜 하필 그 대목에서 멈추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업 뒤 연구실에서 원고를 첨삭하며 빨간 펜으로 또 한 문장을 보태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짧은 글일수록 무엇을 썼는가보다 무엇을 남기기로 했는가가 먼저 보여야 하는데, 저도 자꾸 설명의 양으로 글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오전 수업에서는 방식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책에서 붙잡고 싶은 문장이나 장면 하나를 적고, 그 옆에 자기 생각 하나만 적게 했습니다. 아직 문단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 문장 사이에 들어갈 말은 세 번만 골라 보게 했는데, ‘왜냐하면’으로 이유를 붙여 보고, ‘그런데’로 어긋나는 지점을 찾아 보고, 아무 접속어 없이 나란히 두어 보게 했습니다. 세 문장을 모두 쓰라는 뜻이 아니라, 세 가지 연결을 시험한 뒤 하나를 택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연결어 하나가 달라지자 학생들이 버리는 문장도 달라졌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장면이 오래 남았다. 내가 자주 미루는 말과 닮아서였다.
한 학생의 종이에 적힌 두 문장을 읽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책의 제목도 줄거리도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무엇을 읽었고 어디에서 자기 생활 쪽으로 건너왔는지는 분명했습니다. 다음 문장에 책 속 장면을 한 번만 구체적으로 적으면 600자의 방향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짧은 글은 적게 쓰는 기술이라기보다 버리지 못하던 말 가운데 어느 말을 데리고 갈지 정하는 연습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모든 서평을 두 문장으로 시작하게 하는 방식이 맞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책에 따라서는 먼저 설명해야 겨우 생각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학생마다 손이 풀리는 순서도 다르니까요. 다만 첫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춘다면 내용을 더 찾기 전에, 책에서 하나와 나에게서 하나를 꺼내 나란히 놓아 보는 일은 해볼 만합니다.
오늘 문장도 여기서 멈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