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무게
화요일 이른 아침, 연구실 책상 한쪽에 놓아 둔 인쇄 과제를 두 팔로 안아 가운데로 옮기다가 종이 더미가 오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손바닥으로 윗부분을 누르고 아래쪽을 다시 맞췄습니다. 한글날 연휴가 지난 뒤 제출된 세 분반 과제를 어제까지 출력해 둔 것인데, 화면에서는 파일 이름이 세로로 늘어서 있을 뿐이던 것이 종이가 되자 갑자기 부피와 무게를 가졌습니다. 학생 아흔 명 안팎이 쓴 문장을 읽고 표시할 시간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듯했습니다. 종이 끝이 손등을 스쳤고, 스테이플러로 찍은 모서리들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니다.
맨 위 과제의 표지를 넘기고 첫 장을 읽다가 한 문장 앞에서 연필을 멈췄습니다.
나는 내 생각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잘 쓴 문장이라고 바로 동그라미를 치기에는 어딘가 망설여졌고, 그렇다고 설명을 길게 적고 싶지도 않아 문장 옆에 작은 선만 하나 그었습니다. 쓰면서 알게 되었다는 말은 흔할 수 있는데, 이 학생이 지난번에 가져온 초안에는 없던 문장이어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초안을 소리 내어 읽다가 중간에서 멈추던 얼굴도 잠깐 떠올랐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네요. 학생의 문장보다 내가 붙여 둔 기억이 더 선명해지는 때가 있어서, 그럴 때는 연필을 조금 늦게 움직입니다.
앞쪽 몇 장에는 지나치게 매끈한 문장들이 이어졌습니다. 단락의 길이도 반듯하고, 주어가 달라져도 같은 사람이 쓴 듯한 표현이 반복되어 AI를 거쳤는지 묻고 싶어졌지요. 지난번 초안을 함께 읽던 수업에서는 문장이 자주 끊기고 말하고 싶은 바가 앞뒤로 흔들렸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흔들림이 너무 말끔히 사라져 있더라고요. 그 사이에는 조사를 고쳐 붙이고 같은 말을 두 번 남겨 둔 문장, 앞 문장과 다음 문장을 서둘러 꿰매어 조금 어색해진 문장도 있었습니다. 어색하다고 해서 더 정직한 문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치다가 멈춘 자리가 보이면 나는 그곳부터 다시 읽게 됩니다. 프린터 토너 냄새가 아직 남은 종이를 넘기며 이런 구별을 계속하는 일이 맞나 싶다가도, 빈 여백을 만나면 또 연필을 듭니다.
더미를 분반별로 세 갈래로 나누고 맨 위의 과제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종이 한 장은 가볍지만 모이면 손목을 누르고, 문장 하나는 짧지만 그 옆에 무엇을 적을지는 오래 걸립니다. 종이는 무거워도 한 사람의 문장이 내 표시 때문에 가벼워지지는 않도록, 밑줄을 긋고 물음표를 쓰고 지우개로 한 번 문질렀습니다.
이만큼이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