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속 바다
Idea Status
🌿 Growing (Development Stage)어제 일요일 늦은 오후, 애월 해안도로를 걷다가 늘 지나치던 작은 가게 앞에서 멈췄어요. 보리는 돌담 옆에 코를 붙이고 오래된 냄새를 읽는 중이었고요.
유리창에는 바다 엽서가 여러 장 붙어 있었어요. 희게 번진 파도, 짙은 남색 바위, 한 줄로 곧은 수평선. 기울어진 빛이 유리에 닿을 때마다 바다가 잠깐씩 사라졌어요.

저는 그 앞에서 한참 망설였어요.
매일 비슷한 바다를 보면서도 엽서 속 푸른 선을 고르는 일은 낯설었어요. 여행 온 사람이 기념품을 고르듯 이쪽을 들었다가 저쪽을 내려놓았어요. 결국 구름이 거의 없는 바다 한 장. 조금 심심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 보낼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주소도 문장도 없는 엽서. 계산하고 나오니 보리는 기다렸다는 티도 없이 다음 돌 틈으로 코를 옮겼고, 저는 종이봉투가 구겨질까 괜히 손에 힘을 뺐어요.
집에 돌아와 엽서를 책상위에 놓았어요. 창밖에도 바다가 있고 종이 안에도 바다가 있었어요. 창밖 것은 은빛으로 흔들리고, 종이 속 것은 파란 채로 가만했어요. 커피잔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가 엽서에서 멀찍이 밀어 두기도 했고요. 이런 건 또 조심하게 돼요
제주에 산다는 말은 익숙한데, 제주를 구경하는 마음은 아직 남아 있나 봐요. 둘이 번갈아 나타나는 건지, 제가 아직 이곳을 잘 모르는 건지. 아마 둘 다일지도 모르겠어요.
늘 보는 곳에도 아직 낯선 풍경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