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넘긴 쪽
수요일 낮 열두 시 사십 분쯤, 다음 수업까지 조금 남은 연구실에서 학생의 독후감 한 장을 펼쳤습니다. 종이가 얇아 뒷면의 글씨가 희미하게 비쳤고, 점심 뒤에 마시던 물컵은 책상 한쪽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짧은 글이라 금세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같은 문장을 세 번 되읽었습니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학생이 그 대목에 자를 대지 않고 그은 밑줄, 그 아래에 작게 덧붙인 망설이는 말이 자꾸 눈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강의실에서는 대개 빨리 읽고 핵심을 말한 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갑니다. 학생들도 제가 무엇을 묻는지 짐작하면 답을 서둘러 정리하고, 저는 칠판에 적을 말을 생각하면서 그 속도를 따라갑니다. 그러다 한 문장의 앞뒤를 다시 확인하느라 준비해 둔 설명의 순서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뒤늦게 책장을 넘기며 방금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찾는데, 그 잠깐의 침묵이 길게 느껴집니다. 아마 학생들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저는 페이지 모서리만 만지고 있고요.
오늘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종이책의 한 쪽을 손가락으로 붙들고 있으면 이미 읽은 문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이 됩니다. 화면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데 종이에서는 손가락이 자리를 기억합니다. 왼손 엄지 아래에 앞 문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직 읽지 않은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읽기가 앞으로 가는 일만은 아니라는 말을 수업에서 한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않고 생각만 했던 문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후감 끝에는 한 줄이 따로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아직 잘 모르겠다.
저는 그 문장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첨삭하려고 들었던 펜을 내려놓았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더 쓰라고 표시할 수도 있었고, 앞 문단과 이어 보라고 적을 수도 있었지만, 그날의 문장에는 아직이라는 말이 남아 있는 편이 나아 보였습니다. 모르는 채로 한 문장을 붙들고 있는 그 시간도 읽기라고 불러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