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끝나고 답장을 모아 보냈어요
지난주 수요일 3교시 미술 준비를 하다가 휴대폰 화면이 켜졌는데, 한 학부모님이 준비물과 하교 시간에 관해 문자를 보내신 참이었어요. 물감과 도화지를 나눠 줘야 해서 바로 답할 수는 없는데, 교탁을 오가며 화면을 세 번쯤 봤어요. 읽지 않아도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전에는 알림이 오면 쉬는 시간마다 바로 확인했어요. 짧게 답하면 된다고 생...
Tag: #일상
지난주 수요일 3교시 미술 준비를 하다가 휴대폰 화면이 켜졌는데, 한 학부모님이 준비물과 하교 시간에 관해 문자를 보내신 참이었어요. 물감과 도화지를 나눠 줘야 해서 바로 답할 수는 없는데, 교탁을 오가며 화면을 세 번쯤 봤어요. 읽지 않아도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전에는 알림이 오면 쉬는 시간마다 바로 확인했어요. 짧게 답하면 된다고 생...
어제 일요일 늦은 오후, 애월 해안도로를 걷다가 늘 지나치던 작은 가게 앞에서 멈췄어요. 보리는 돌담 옆에 코를 붙이고 오래된 냄새를 읽는 중이었고요. 유리창에는 바다 엽서가 여러 장 붙어 있었어요. 희게 번진 파도, 짙은 남색 바위, 한 줄로 곧은 수평선. 기울어진 빛이 유리에 닿을 때마다 바다가 잠깐씩 사라졌어요. 저는 그 앞에서 한참 망설였어요...
지난주 일요일, 눈을 떴다가 알람부터 껐어요. 나이트 이틀 뒤 휴무라 늦게 자도 되는 날이었거든요. 다시 눈을 감았고, 다음에 휴대폰을 보니 열한 시가 조금 넘었어요. 그때부터 누워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랑 약속한 것도 없고 오후에 갈 데도 없는데 그랬어요. 이불을 걷는 순간 쉬는 날이 아니라 밀린 일을 처리하는 날이 됐어요. 세탁기...
금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보고 몸을 돌리다가 민지와 눈이 마주쳤어요. 민지는 어깨를 조금 들썩일 만큼 놀라더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작게 말했어요. 빈자리는 민지와 어머니의 맞은편이었고, 모른 척 다른 칸으로 가기도 이상해서 그대로 앉았어요. 교실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먼저 다가와 연필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아이인데, 어머니...
지난 수요일 저녁, 인천 집 식탁에 딸의 사회 공책과 출력해 둔 자료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딸은 자료를 몇 번 넘겨 보면서도 첫 문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이 자료를 먼저 쓰고, 그다음에 이유를 붙이면 되잖아”라며 문장 순서와 표현까지 고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길어지면서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딸은 “아빠, 내가 할 거야” ...
지난 화요일 점심시간이 지나고, 남동공단 회사 제 자리에서 밀린 온라인 교육의 마지막 차시를 틀었는데, 모니터 한쪽에는 강의 창, 다른 쪽에는 견적서와 메일이 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강사 목소리를 배경처럼 켜 두고 거래처 답장을 쓰느라, 끝난 차시는 거의 없었습니다. 집중력이 모자란가 싶어 퇴근 뒤에도 들어 봤습니다. 피곤한 날에는 재생 표시만 길게...
지난 목요일 아침 7시 40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회사 현관으로 걸어갔습니다. 공장 쪽은 아직 불이 덜 켜져 있었고, 오래 잡아 온 철문 손잡이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는데 문을 당기는 순간 스무 해 전 처음 출근하던 날의 낯선 냄새가 잠깐 떠올랐습니다. 기름 냄새였는지 새 작업복 냄새였는지는 이제 확실하지 않습니다. 입사 첫날에는 영업이 무엇인지도 잘...
“이것만 가져가. 많이 안 넣었어.” 토요일 오후, 춘천 집에서 나오려는데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통을 하나씩 꺼냈어요. 멸치볶음, 깻잎장아찌, 무생채가 식탁 위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저는 집에도 먹을 게 있다고 세 번쯤 말했는데,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작은 통을 찾느라 서랍을 뒤졌어요. 멸치볶음은 정말 조금만 담아 달라고 했어요. 혼자 먹으면...
“화면 잘 보입니까?” 어제 월요일 오후, 남동공단 회사 회의실에서 빔프로젝터 리모컨부터 눌렀습니다. 거래처 관리 화면 사용법을 알려주려고 팀원 6명을 앉혀 놓은 참이었고, 온라인 교육 담당을 맡았으니 준비한 자료를 빠짐없이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순서대로 넘겼습니다. 질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
“선생님, 저는 진짜 억울해요.” 점심을 먹고 2학년 교실에 올라오자 한 학생이 찾아왔어요. 쉬는 시간에 자리 때문에 친구와 말이 세게 오간 모양이었어요. 예전 같으면 누가 먼저 그랬는지부터 물었을 거예요. 빨리 가려야 다음 일이 안 생긴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늘은 빈 의자에 잠깐 앉아 있으라고 했어요. 학생 물병을 가리키며 물부터 한 모금 마시게 했...
“다음 달까지만 일하려고 합니다.” 어제 목요일 오후, 남동공단 회사의 작은 회의실에서 최 대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두 손을 모은 채 한참 망설이더니 더 늦기 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봉이 문제인지, 맡은 업무가 힘든지부터 물었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 ...
두부 코너 앞에서 한참 서 있었어요. 어제 6시가 조금 넘어 집 근처 마트에 들렀는데, 배는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어요. 두부 코너에서 반찬 코너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같은 길을 걸었어요. 카트를 끌 것도 없어서 장바구니만 손에 들고요. 점심때 김 선생이 “오늘 저녁은 뭐 드세요?” 하고 물었던 게 떠올랐어요. 저는 “혼자 먹을 건데요,...
지난주 수요일 오후, 나이트 끝나고 자고 일어나 동생이랑 동네 휴대폰 매장에 갔어요. 요금제를 바꿀지 말지만 보자고 들어갔는데 번호표를 뽑고도 한참 서 있었어요. 잠은 잤는데 머리는 아직 덜 켜진 느낌이었고요. 직원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데이터, 결합, 할인 항목을 차례로 설명했어요. 말이 빠른 편도 아니었을 텐데 병동에서 제가 신규에게 순서를 설명할 ...
“그럼 여기 없어져요?” 화요일 오후, 하교 지도를 마치고 정문 앞을 지나는데 한 아이가 가게 한쪽 셔터를 가리켰어요. 문방구 앞에 모여 연필깎이와 지우개를 구경하던 아이들이 저보다 먼저 종이를 발견한 거예요. 흰 종이에는 이달 말까지만 영업한다는 문장이 검은 글씨로 적혀 있었어요. 저는 다음 달에도 문구점은 다른 곳에 있다고 대답했어요. 조금 걸어가면 ...
아침 일곱 시쯤 병원역에서 지하철을 탔어요. 나이트 인계를 끝낸 사람들은 대체로 말이 없어요. 저도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 빈자리에 앉아 가방만 무릎에 올렸어요. 맞은편에는 교복 입은 학생이 서서 작은 단어장을 보고 있었어요. 눈이 감기면 고개가 한번 떨어지고, 다시 페이지를 폈어요. 손잡이를 잡은 손도 열차 움직임대로 계속 흔들렸고요. 요즘 중간고사 때인가...
전원 버튼을 누르자 빨간 불이 잠깐 들어왔어요. 지난 금요일 1교시 전이었어요. 창가 쪽 커피포트는 낮게 딸깍거리더니 그대로 조용해졌어요. 두 번 더 눌렀지만 물은 끝내 끓지 않았어요. 박 선생님과 미지근한 물을 컵에 받아 들고 잠깐 서 있었네요. 저는 새로 사야 하나 먼저 생각했어요. 박 선생님은 옆 교무실에 남는 게 있는지 물어보자고 했고요. 말은 그게...
회색 목이 돌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아서 어제 수요일 아침, 교문 앞에서 걸음이 멈췄어요. 학교 뒤 하천 가장자리였어요. 왜가리 한 마리가 물만 보고 있었는데 부리 끝도 거의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버려진 우산인가 했어요. 저는 시험지 봉투를 든 채 난간 옆에 섰어요. 봉투 모서리가 손바닥을 자꾸 눌렀고,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 더 보고 싶었어요. ...
화요일 점심 무렵, 김 선생님의 과제 아래에 답글을 길게 썼어요. 선이 자꾸 끊기는 이유와 손목 각도, 다시 그릴 때 먼저 볼 곳까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니 손은 꽤 바빴는데 제 그림은 한 줄도 없었어요. 조금 웃겼어요. 창가의 태블릿은 검은 화면 그대로였어요. 보리는 그 앞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잠들어 있었고요. 커튼 틈의 희끗한 빛이 등 위에서 천...
지난주 나이트 인계가 끝난 아침, 병동 스테이션에서 세 번째 신규가 물었어요. “선생님은 간호사 말고 하고 싶은 일 있어요?” 컴퓨터를 끄던 손이 잠깐 멈췄어요. 자기는 아직 모르겠는데, 가끔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대요. 저는 바로 답을 못 했어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같은 게 아니잖아요. 병원 밖에서...
“분명히 여기에 풀을 넣어 뒀는데.” 금요일 2교시 쉬는 시간, 교탁 아래 서랍을 반쯤 빼 놓고 색연필 통과 자를 하나씩 꺼냈어요. 풀은 안 보이고 뚜껑만 두 개 나왔고요 (도대체 짝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서랍 맨 뒤에 납작하게 끼어 있던 작은 봉투 하나가 손끝에 걸렸어요. 봉투 안에는 지난해 우리 반 아이가 접어 준 종이별 편지가 들어 있...
“아빠, 라면 두 개 먹자.” 지난주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인천 집에 들어오니 중2 아들이 주방 문 앞에서 말했습니다. 아내와 딸은 먼저 잠든 뒤였고, 저도 저녁을 건너뛴 터라 냄비부터 꺼냈습니다. 밤늦게 두 개는 많지 않으냐는 말은 물을 받은 다음에야 떠올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공부는 했느냐, 게임은 얼마나 했느냐부터 물었을 겁니다. 그날은 아들이...
지난주 화요일 오전, 남동공단 회사 회의실에서 박 사원 앞에 거래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놓았습니다. 입사 석 달째인 박 사원이 견적 납기를 묻는 전화를 직접 걸었고, 저는 옆자리에서 듣기만 했습니다. 첫 인사가 조금 빨랐고 제품 번호를 확인할 때는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통화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제가 먼저 답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신입이 들어...
창문부터 열었어요. 8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두 시쯤, 아무도 없는 3학년 교실은 바깥 소리만 크게 들어왔어요. 방학 마지막 금요일이라 2학기 시간표를 붙이고 이름표 몇 장을 다시 뽑으러 잠깐 나온 날이었어요. 교탁 위에는 방학 전에 놓아둔 가위와 풀도 그대로였는데, 제 교실 같지 않았어요. 시간표는 칠판 옆에 대 보았다가 조금 기울어서 다시 뗐어요. ...
물병 뚜껑을 닫고 정상 벤치 옆에 서서 한참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어제 일요일 오전, 계양산 아래로 펼쳐진 풍경에서 남동공단 쪽을 찾아보는데 제가 방향을 제대로 짚은 것인지는 조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낮은 지붕과 길이 붙어 있어 생각보다 조용하고 작게 보였습니다. 평일에는 납기 전화 한 통, 수정 견적서 한 장에도 공장들이 아주 크게 느껴집니다. 그 안...
지난 토요일 오후, 거실 시계만 자꾸 봤어요. 소파에 앉은 건 점심 전이었고, 잠깐 쉬려던 참이었어요. 아침에는 평소처럼 하천을 뛰어 5km를 채우고 돌아와 바로 샤워했어요. 수건까지 널 때는 하루가 길 줄 알았어요. 수행평가 기록을 정리해야 했고 다음 주 수업 자료도 봐야 했는데, 노트북은 충전선만 꽂힌 채 식탁 위에 그대로 있었어요. 휴대폰을 ...
점심을 먹고 회사 휴게실에 앉아 경제면을 반으로 접었습니다. 종이가 바스락거리자 옆에 있던 막내 사원이 휴대전화를 내밀었습니다. 제가 찾던 기사가 화면에 벌써 떠 있었습니다. “팀장님, 이 기사 보시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신문을 회사로 가져온 지는 오래됐습니다. 예전에는 첫 면부터 뒤까지 훑었는데, 요즘은 펼쳐 놓고도 끝까지 읽는 날이 드뭅니다...
“떡볶이 먹고 갈래요?” 지난주 목요일, 종례가 끝나고 교실 바닥의 색종이 조각을 줍고 있는데 김 선생이 문 앞에서 물었어요. 둘 다 가방을 멘 채 학교 근처 분식집까지 걸어갔고, 창가의 두 사람 자리에 나란히 앉았어요. 떡볶이와 튀김(김말이와 오징어)을 시켜 놓으니 그제야 퇴근한 것 같았어요. 휴대전화에는 오후에 온 학부모 메시지가 남아 있었어요. 아이...
어제 종례가 끝난 뒤, 교실 바닥에 의자 끄는 소리만 잠깐 남았어요. 아이들이 놓고 간 공책 몇 권을 교탁 위에 가지런히 쌓고 알림장을 적으려는데 칠판 한쪽의 받아쓰기 날짜가 눈에 들어왔고, 아직 금요일 오후인데 다음 주가 갑자기 바로 앞까지 온 것 같았어요. 지우개를 들었어요. 날짜는 그대로 두었어요. 알림장에는 준비물부터 쓰면 되는데 월요일 1교시 장...
지난 토요일 오후, 동네 그림책 서점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작은 의자 하나가 비어 있었어요. 조카에게 줄 책 한 권만 고를 생각이었는데, 가방을 내려놓을까 하다가 그냥 멘 채로 책장 앞에 섰어요. 처음 꺼낸 건 짙은 파란색 표지였고, 그다음은 주황색 고양이가 그려진 책이었어요. 몇 권만 훑어볼 참이었는데 시계를 다시 봤을 때는 두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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